작성일 : 11-05-20 17:16
[동아일보] 이제 세상은 에코 주부를 원한다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4,436  
[동아일보]

블루마블 게임판의 파란색 블록에 나란히 붙은 덴마크 코펜하겐과 스웨덴 스톡홀름. 몇 년 전 겨울에 가 본 그곳 사람들은 존경심이 들 만큼 검소했습니다. 옷이든 가구든 오래됨에 가치를 뒀죠.

매서운 추위와 짧은 낮 때문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조명은 어둡지 않을 정도로만 밝혔습니다. 가급적 쓰레기를 안 만들고, 만들더라도 분리수거를 엄격히 했어요. 이유를 묻자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이라고 했습니다.

기자의 친구는 해외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수년간 스톡홀름에 살면서 난방비를 거의 안 냈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설치된 쓰레기 자동수거장치에서 재생에너지가 나와 난방이 됐기 때문이죠. 주부들도 재활용품, 불에 타는 것, 안 타는 것으로 나눠 분리수거를 잘하는 데다 기업도 쓰레기 자원화에 공을 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수돗물도 그냥 마셨습니다. 스톡홀름에 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을 끓여 아기 분유를 탄다고 하자, 이웃들은 이상하게 여겼답니다. “왜 깨끗한 수돗물을 놔두고….”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화장실 수돗물을 벌컥 들이켜려는 딸을 말리느라 진땀을 뺍니다.

다음 달 ‘자전거 천국’ 코펜하겐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 정상회의가 열립니다. 이제 시대는 ‘에코(eco·환경) 주부’를 요구합니다.

일본에서는 ‘에코 다이어트’란 말도 유행이죠. 생활용품 숍 ‘도큐핸즈’는 가정용 탄소 배출량 계측기를 팝니다.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도레이사(社)의 신소재를 활용한 방한 내의를 컬러풀하게 만들어 ‘내복 입기’를 이끌었고요. 1000엔짜리 장바구니는 ‘탄소는 남 얘기’로 여기던 일본 주부들이 열광하는 패션 소품이 됐습니다.

국내 시민단체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는 24일 국회에서 ‘녹색 성장, 아줌마 손에 있소이다’란 슬로건으로 ‘남은 음식물 자원화 토론회’를 엽니다. 아무리 주부들이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도 자원화하지 않으면 소용없으니까요.

며칠 전 한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강도 높게 확정하며 “기후변화 대응에는 전 국민의 생활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의 경우를 보면 에코 주부는 하늘에서 절로 떨어지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에코와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같은 에코(echo)는 메아리입니다. 정부와 기업이 녹색 기반을 잘 닦으면 국민도 화답할 겁니다. 한국 주부들만큼 ‘깨어 있는’ 여성들도 세계에서 드뭅니다. 한국의 에코 주부가 더위 먹은 지구를 살리는 데 공헌하리라 믿습니다.

김선미 동아일보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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