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7 13:56
[국민일보]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김용숙 대표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3,728  

[파이팅!여성시대]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김용숙 아나기 코리아 B&B 대표

 
‘아줌마’ 하면 생각나는 것은? 추리닝 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끄는 펑퍼짐함,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빈 좌석을 보면 몸을 날리는 몰염치,남성은 물론 여성도 아닌 제3의 성…. 이 땅에서 ‘아줌마’라는 단어는 대체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이런 부정적인 시각에 정면 도전,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홈스테이 운동을 통해 아줌마들의 힘을 보여준 아나기 코리아 B&B(Bed & Breakfast) 본부장 김용숙(52)씨가 그 주인공.

“‘아나기’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의 줄임말입니다. B&B 본부는 월드컵 때 외국인 관광객들의 숙박문제 해결을 돕고 한국의 인정(人情)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 결성했습니다

당시 본부는 750가정의 신청을 받아 국제매너,전통예절,다(茶道),우리음식과 상차림 등 23시간의 교육을 실시,준비를 단단히 했다. 월드컵 때 외국인 방문객들이 예상 외로 많지 않아 100가정밖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아나기 코리아 B&B 본부로선 좋은 경험과 힘을 얻었다.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의 따뜻한 문화를 맛보게 해줄 수 있는 홈스테이는 관광활성화에도 한몫할 수 있고,아줌마들에게 일자리도 마련해줄 수 있습니다. 또 가족이 손님맞이를 위해 힘을 합치니 가정화목에도 도움이 되지요.”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는 홈스테이지만 관계 당국의 무관심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김씨는 도시와 농촌의 교류방법으로 활용할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월드컵 때 홈스테이운동으로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아나기’가 발족한 것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1999년 8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책을 펴낸 뒤 그해 11월 같은 이름의 단체를 발족했다.

“그때 아줌마를 우습게 보는 사회에 아줌마의 힘을 알리고 싶어 책을 썼어요. 그 책을 보고 동병상련인 아줌마들이 모여들어 저절로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녀가 펴낸 책은 잘못 부과된 세금 8500만원을 바로잡기 위해 관공서를 찾아갔다가 ‘저리 가라’‘담당이 아니다’ 등등 공무원들의 불성실하고 퉁명스런 응대에 화가 나 국가를 상대로 재판을 벌인 얘기다. 나라를 상대로 재판한 게 무슨 얘기가 되냐고? 변호사 고용해 우아하게 재판한 게 아니고 ‘김용숙 아줌마’가 96년부터 3년간 혼자 온갖 설움받아 가며 쫓아다닌 끝에 재판에 이긴 얘기다. 이겼는 데도 압류가 풀리지 않자 세무서장실로 처들어가 압류해제까지 직접 받아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스스로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탤런트도 했고,비행기 승무원으로 하늘을 날아다녔고,여성의류제조업 하면서 돈도 좀 벌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이력이 여간 화려한 게 아니다. 1972년 MBC 5기 탤런트 공채에 합격해 지금도 현역임을 자부해마지 않는다. 75년에는 당시 여성들 선망의 대상이었던 비행기 여승무원시험에 합격,4년간 근무했다. 결혼한 뒤 79년부터는 여성의류제조업을 시작,기획 디자인 판매 등을 혼자 다 해냈다. 그러다 92년 사업이 곤두박질쳐 쫄딱 망하면서 김씨도 어쩔 수 없이 ‘아줌마’가 됐던 것.

“남편은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 절대 못하는 사람이에요. 엉뚱한 세금이 나왔는데도 나몰라라 하니 어쩌겠어요. 아줌마가 나서야지요.”

여기저기서 ‘아줌마’이기 때문에 무시당했지만 아줌마의 장점인 끈기로 세금문제를 해결한 김씨는 이 사건이 자신의 삶을 바꾼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말한다. 아쉬운 것 하나 없고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공주병 환자에서 꿋꿋한 아줌마로 거듭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재판과정에서 도움을 얻고자 만났던 박원순 변호사의 안내로 시민활동에 발을 들여놓게 됐기 때문이다.

96년부터 2년 동안 참여연대에서 문화사업국장을 했던 김씨는 이 경험이 없었다면 찾아오는 아줌마들과 수다나 떨다 헤어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시민운동의 묘미를 맛봤던 김씨는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아줌마 200여명과 함께 아나기를 발족,신아줌마운동을 시작한 것.

아나기의 목적은 아줌마를 수다 무식 몰염치의 대명사로 여기는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고 아줌마 자신이 아줌마라는 호칭에 자긍심을 갖게 하는 한편 아줌마의 힘으로 사회부조리를 바로잡아 건강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아줌마는 생활의 지혜를 한아름 담고 있는 보물창고이자 삼권장악자입니다. 자녀교육권,소비지출권,남편조종권을 갖고 있지요. 아줌마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청소년은 미래의 기둥이지만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임을 강조하는 그는 아줌마 운동은 여성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아줌마들은 여성단체들이 펼치는 운동에는 주눅이 들어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아줌마 운동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김씨는 아나기 회원들에게는 물론 아나기 B&B회원들에게도 가입비나 알선료를 일체 받지 않아 행사는 물론 정기회의라도 할라치면 후원자를 찾아나서는 고달픈 대표다.

“그래도 나만 위해 살았던 때에는 맛보지 못했던,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뿌듯함 때문에 재밌고 행복합니다.”

아줌마 운동을 정말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열망에 김씨는 올해 경희대 NGO 대학원에 진학,공부를 하고 있다. 2300여명의 아나기 회원들을 비롯해 이 땅의 아줌마들을 위해 세상의 편견과 맞싸우는 그녀의 도전이 성공하는 날 ‘아줌마’는 지혜와 경험이 많고 끈기가 있는 단단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지 않을까.

◇아줌마 헌장

-우리는 아줌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산소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신아줌마로 거듭난다.

-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나의 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우리는 사치를 좋아하는 아줌마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땅에서 공짜문화를 없애기 위하여 노력한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일지라도 스스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우리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남의 탓,환경탓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항상 반성한다.

-우리는 남편과 가족들의 협조를 당당히 받는다.

-우리는 경제적 능력이나 전문지식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문화 교육,정신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우리는 목표가 없으면 타락한다는 것을 명심한다.

-우리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임을 증명해보인다.

김혜림 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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