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4-04 15:58
[레이디경향]2010.03.15 세상을 바꾸는 아줌마들 ‘아·나·기’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3,394  

세상을 바꾸는 아줌마들 ‘아·나·기’


생활 속 불편부터 환경 살리기 운동까지

대한민국에서 ‘아줌마’를 둘러싼 시선은 썩 곱지만은 않다. 염치도 없고, 거칠 것도 없고, 속물적인 ‘아줌마’는 아줌마들 스스로도 꺼리는 호칭이다. 하지만 이제 ‘아줌마’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 할 것 같다. 합리적이고 당당하며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아줌마’로 말이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 외치며 나선 이들 때문이다.

행복한 사회? 아줌마 손에 있다 우스갯소리 중에는 ‘우리나라에는 남자, 여자 외에 또 하나의 성(性)이 더 있다’라는 말이 있다. 바로 ‘제3의 성(性)’인 아줌마가 존재한다는 것. ‘세일’이라고 하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이들, 버스나 지하철에서 빈 자리를 발견하면 가방부터 던지고 보는 ‘위력’을 발휘하는 이들, 남편이며 자식들 뒤치다꺼리에 치여 자신의 외모는 가꾸지 않으면서 무슨 일이건 일단 ‘큰 소리’부터 내고 보는 이들…. ‘아줌마’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려보는 모습이다.

언제부턴가 ‘아줌마’들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해왔다. 심지어 ‘아줌마’들 스스로도 자신이 ‘아줌마’로 불리면 파르르 화를 내며 자존심 상해하는 데는 이처럼 잘못 인식되고 있는 아줌마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이런 아줌마들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한 명의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살아나가는 것은 물론, 살림을 책임지고 가족을 챙기는 ‘아줌마’로서도 그 본연의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특히 ‘아줌마’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뒤엎고 사회를 밝게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나선 아줌마들이 눈에 띈다. ‘아줌마 스스로 나라의 기둥이 되자’는 생각으로 아줌마들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김용숙 대표(52)를 비롯한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회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나·기’는 아줌마들을 중심으로 창립된 생활문화 개선 NGO예요. 주부들에게 NGO라는 개념이 낯설 수 있는데,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동안 우리가 나와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살아왔다고 하면 이제는 좀 더 사회성을 키워서 나와 사회의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갖고 의미 있게 살아가자는 거죠. 아줌마들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하잖아요. ‘아·나·기’는 나, 내 가족만이 아닌 우리 가족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이라고 보면 돼요.”

‘아·나·기’의 시작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0년째 꾸준히 ‘아·나·기’ 대표로 각종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용숙 대표가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책을 펴낸 뒤 같은 이름의 단체를 발족하고 작은 실천을 시작한 것이 ‘아·나·기’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 실천한 일은 아니었어요. 당시 작은 사업을 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사업이 망하면서 송사에 휘말리게 됐어요. 아는 것도 없고 소위 말하는 ‘빽’도 없는 제가 변호사도 없이 얼마나 막막하고 고달팠겠어요. 여자라고, 아줌마라고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지지 않겠다’는 각오로 맞섰고,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알리고자 책도 쓰고 단체도 만들게 됐죠.”

부당하게 부과된 세금을 바로잡고자 관공서를 찾아간 김용숙 대표는 불성실하고 막무가내인 일처리에 분개해 ‘나 홀로’ 투쟁을 시작했다. 재판은 3년 가까이 이어졌다. 온갖 설움과 억울함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이 용감한 ‘아줌마’는 결국 승소했고 이 굴곡의 과정을 담은 책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김 대표의 인터뷰 기사와 책을 읽고 동질감을 느낀 ‘아줌마’들이 모여 뜻을 보태면서 ‘아·나·기’는 여기까지 오게 됐다.

“체계적인 준비 과정 없이, 변변한 사무실 하나 없이 시작한 일이라 어려움도 많았죠. 10년이란 세월을 이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랍고 감격스럽고 기뻐요. 함께해준 수많은 ‘아줌마’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고요. 사실 MBC 공채 탤런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비행기 승무원으로도 일했고, 이후에는 의류회사를 운영하는 등 화려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거든요. 혼자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한 명의 ‘아줌마’로 수많은 문제들과 맞닥뜨리니 쉽지만은 않더군요. 하지만 뜻을 모아준 ‘아줌마’들 덕분에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어요.”

시민운동이라니, 경험도 지식도 전무한 김용숙 대표였지만 이 세상 모든 아줌마들이 ‘아줌마’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비슷한 바람을 갖고 있던 2백여 명의 ‘아줌마’들이 금세 모여 ‘아·나·기’를 이끌고 나섰다. 이들은 왜 별도의 ‘아줌마 운동’이 필요하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그냥 ‘여성운동’을 하면 되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성은 나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지만 아줌마는 남편, 시댁, 친정, 자녀 모두를 책임지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욱 사회를 올바르게 바꿔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죠. 관심의 폭도 넓고요. 또 혼자서는 ‘힘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뭉치면 무서울 것이 없어지잖아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요.”

이들은 단순히 ‘아줌마’들의 권리를 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회에서 남녀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것을 추구한다. 사회적으로 힘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아줌마’지만 ‘자녀교육권, 소비지출권, 남편조종권’ 등 실질적인 권한은 모두 아줌마들이 갖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족을 위하고 나아가 타인을 생각하는 활동을 펼쳐나가려 한다.

아줌마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다 지난 10년 동안 ‘아·나·기’가 이룬 성과는 눈부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반인들에게 ‘아·나·기’의 이름을 널리 알렸던 홈스테이 사업이다. 2002년 월드컵을 맞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 관광객들을 가정에 초대해 숙박 문제를 해결하고 전통 가정문화를 알리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당시 2천여 건의 신청을 받아 7백여 가정을 선정한 뒤 전통 예절과 국제 매너 등의 교육을 실시하고 교육인증서를 수여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했다. 아줌마들 스스로 국위를 선양한다는 뿌듯함도 느끼고 일거리를 창출한다는 의미에서 모범적인 사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와 각 관공서를 대상으로 벌였던 ‘민원서류 쓰기 운동’도 주목할 만하다. 사회적으로 불편하거나 부당한 사항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적극적으로 민원을 제기해 개선을 이끌어내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살다 보면 사회의 그릇된 관행, 특히 잘못된 정책으로 빚어지는 문제들을 자주 겪잖아요. 보통 ‘다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참거나 그저 전화로 따지는 정도만 하고 넘어가는데 그러다 보면 근거가 남지 않아 근본적으로는 고쳐지지 않아요. 생활민원에 대해 서류를 써서 지자체나 담당기관에 보내면 법적으로 담당자가 반드시 그 답을 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이를 적극 활용하는 거죠.”

그런 ‘공식적인’ 일은 할 줄 모른다고 걱정하는 아줌마들에게 ‘아·나·기’ 회원 주혜경씨(58)는 말한다. 그저 불편한 사항을 편지 쓰듯 글로 옮겨 보내면 된다고. 대신 ‘어려워서’가 아닌 ‘귀찮아서’ 보고 넘기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방법을 모르겠다면 개인이 아닌 ‘아·나·기’ 회원의 이름으로 하면 된단다.

“저 또한 평범한 ‘아줌마’지만 이렇게 해서 개선한 점들이 많아요. 얼마 전에는 집 근처 다리 밑 자전거·보행자 겸용 도로를 지나다 너무 어두워서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등이 있어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밝기가 너무 약하고 시설물도 엉망인 것이 많더라고요. 민원서류를 보내서 고쳤죠. 제가 한 번 움직였을 뿐인데 저를 포함해 많은 주민들의 생활이 개선됐잖아요.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에요?”

이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꾸준히 추진해온 ‘모자빈곤투병 가정 돕기’ 사업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이혼 후 혼자 가정을 꾸려 나가는 아픈 여성들에게 힘을 나누어주는 활동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는 ‘이웃’을 위해 회원들이 1:1 자매결연을 맺어 가족을 돌보듯 관심과 도움을 전하고 있다. 특정 단체를 통해 지원을 받는 상황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큰 도움은 주지 못하지만 지친 이들의 마음을 만져줌으로써 돈보다 더 큰 사랑과 기댈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다시 시작된 제2의 레이스, 목표는 ‘환경’ 지난해 11월, 창립 10주년을 맞은 ‘아·나·기’는 그동안의 노하우와 성과를 바탕으로 제2의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이제껏 키워온 ‘아줌마의 힘’을 적극 활용해 좀 더 가치 있고 좀 더 적극적인 의미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새로운 출발의 종착점에는 ‘생명’이라는 가치를 설정해뒀다. 함께할 ‘동지’들의 폭도 넓혔다. 국내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 아줌마들과도 연계해 ‘녹색 생활화’ 과제를 풀어 나갈 예정이다.

“앞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환경운동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으로 ‘남은 음식물 자원화 활동’, ‘도농 아줌마 친구 교류 활동’, ‘에코 아줌마 교육 활동’, ‘에코 예술단 활동’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줌마 특유의 정신으로 열심히 해보려고요.” (김용숙)

계획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해 11월 국회환경정책연구회와 공동으로 ‘남은 음식물 자원화 국민 공감 대토론회’를 개최하며 활동의 첫 삽을 떴다. 이 자리에서 나온 다양한 연구 결과와 실천 방안을 중심으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기로 했다. 봄이 오는 3월부터는 ‘아·나·기’ 활동에 좀 더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는 회원 정진주씨(48)는 ‘녹색 생활화’ 운동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아줌마’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며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식단을 계획하는 것부터 환경을 생각해 집안일을 하는 것까지 바로 ‘아줌마’들이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 활동이에요. 지금은 그저 편한 대로 살지만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환경문제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처음에는 저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소할 때 세제를 덜 쓰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노력하려고 해요. 내 울타리 안에서부터 바꾸면 세상도 금방 바뀌지 않을까요?”

세상을 긍정적으로, 행복하게 바꿔 나가는 데 앞장서고 있는 ‘아·나·기’ 회원들은 대한민국 모든 아줌마들이 ‘아줌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날을 위해 다 함께 힘을 합치자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된 삶을 살고 싶은 ‘아줌마’들도 ‘아·나·기’의 문을 두드릴 것을 권했다. 이 ‘용감한’ 아줌마들 덕분에 오늘도 이 세상이 한 뼘 더 행복해짐을 느낀다.

아·나·기의 아줌마 헌장 (1)우리는 ‘아줌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2)우리는 산소 같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새 아줌마’로 거듭난다. (3)우리는 나와 가족만 생각하는 이기주의를 항상 반성한다. (4)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나의 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5)우리는 이 땅에서 공짜 문화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다. (6)우리는 사치를 좋아하는 아줌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7)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스스로 해결하도록 노력한다. (8)우리는 일을 하며 환경 탓, 남의 탓을 하지 않는다. (9)우리는 남편과 가족의 협조를 당당하게 받는다. (10)생활문화교육, 정신교육을 지속적으로 받는다. (11)우리는 목표가 없으면 타락한다는 것을 명심한다. (12)우리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임을 증명해 보인다.

‘아·나·기’는 아줌마라면 누구든 가입할 수 있으며 남편들은 특별회원 자격으로 참여할 수 있다. 회원이 되고 싶다면 사무실로 직접 연락해 가입 의사를 밝히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해도 된다. 문의 070-8289-0059, www.anagi.info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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