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4-04 15:40
[미즈내일] 461호 2010년… 당신이 갖춰야 할 아줌마 경쟁력에 대하여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3,315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김용숙 대표

2010년… 당신이 갖춰야 할 아줌마 경쟁력에 대하여

[출처] [미즈내일] 461호

일명 ‘아나기’를 아시는지? 벌써 11년째 ‘아줌마 파이팅’을 외치는 생활 문화 단체다. 1999년 11월 19일 ‘아줌마 헌장’을 발표하며 대한민국에 아줌마 운동이라는 회오리를 일으킨 김용숙 대표를 인터뷰 자리에 초대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대한민국 아줌마 운동을 일으킨 김용숙 대표의 시원시원한 미니 특강처럼 치러졌다. 주제는 ‘2010년을 살아가는 우리 아줌마들의 자세’다.

당당한 아줌마, 현명한 어머니, 훌륭한 아내…

결혼과 함께 얻는 여자들의 호칭 ‘아줌마’. 동네 꼬마들에게 난생처음 “아줌마~”라는 호칭을 듣던 날, 어처구니없어 귀밑까지 새빨개지며 밀려오던 분노가 엊그제일처럼 생생하다. 마냥 새색시일 것만 같던 시간도 지나고 하나 둘 아이가 생겼지만, 여자들에게 아줌마라는 호칭은 여전히 낯선 게 사실. 그런데 여기 그토록 듣기 싫던 ‘아줌마’라는 호칭을 대놓고 큼직하게 불러대는 이가 있으니, 생활 문화 단체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의 김용숙 대표다. 그에게 아줌마는 당당하고 현명하고, 훌륭한 존재. 그는 아줌마의 역할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아줌마라는 건 어떻게 보면 결혼하면서 얻는 타이틀이에요. 인간으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역할이죠. 아줌마라는 호칭을 싫어하는 건 아줌마를 둘러싼 부정적인 시각 때문일 거예요. 바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죠.”

그리하여 그는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단체를 설립하면서 음지에 자리 잡은 ‘아줌마’라는 타이틀을 양지로 끄집어낸다. 아줌마의 사회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을 극복하기 위한 12가지 행동 지침을 담은 ‘아줌마 헌장’도 제정·선포했다. 우리 스스로 아줌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거둬들이자는 것이다. 아줌마 본연의 권리와 의무도 빼먹지 않았다. ‘아줌마의 3대 활동’이라 칭한 의무 운동, 권리 운동, 문화 운동이 그것. 이렇게 아줌마들을 독려해온 게 벌써 11년째다.

이제 김용숙 대표에게 당당한 아줌마, 현명한 어머니, 훌륭한 아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지, 21세기 아줌마가 갖춰야 할 경쟁력은 무엇인지 하나씩 들어보자.

21세기 아줌마의 자세 1. 공짜 앞에 당당한 아줌마가 되어라

21세기 아줌마의 경쟁력에서 그가 가장 주목하는 건 자신에 대한 당당함이다. 당당함이야말로 곧 올곧은 정체성을 낳기 때문이다. 특히 아줌마들에게 ‘욕심과 공짜’는 최대 약점에 가깝다. 돈과 물질에 대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다 보니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 결국 욕심을 절제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 즉 권리와 권한을 찾기 위한 기본적인 사항이다. 욕심을 버리면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거침없이 생각한 바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란다.

지금부터 25년 전, 자신이 운영하던 의류 제조업의 실패를 겪은 그는 갖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맘 편히 사지 못하는 빡빡한 현실을 놓고 남편 탓하기 바빴단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인식을 전환했다는데, 뭐든 ‘못 사는 게 아니라 안 산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사봤자 나중엔 쓰레기만 나오지 않겠냐며 자신을 다독였더니 생각보다 덜 불행하게 느껴졌다고.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 날 그의 패션은 온통 복고풍이다. 그렇다고 촌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니트 안에 받쳐 입은 오렌지색 셔츠는 10년 입어도 끄떡없는 그의 필수 패션 아이템. 다이어리와 필통은 또 어떤가. 30년지기라는 통가죽의 필통은 앞으로 20년은 끄떡없어 보인다. 남들 따라 사는 모방 쇼핑이 아닌 자기의 의지를 실어 쇼핑을 하다 보니 좋아하는 만큼 오랫동안 아끼며 사용한단다.

욕심을 버리라는 게 쇼핑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불필요한 소비도 멈춰야 한다. 공짜도 받지 말아야 한다.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 비닐봉투 하나 내게 불필요한 것은 절대 챙기지 않는다. 이렇게 공짜에 대한 욕심을 절제하다 보면 나중엔 필요한 것에도 절제하는 힘이 생긴다.

21세기 아줌마의 자세 2. why와 how, 의문표를 품고 살아라

유선을 달지 않으면 TV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유선을 신청할 것인가, “시청료를 내는데 왜 유선을 안 달면 TV시청을 못 하는가?”라고 되물을 것인가? 21세기 아줌마의 자세로 필요한 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제 김용숙 대표의 해결법을 들어보자.

“내가 필요해 신청하는 것과 그걸 신청하지 않으면 TV가 안 나오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가 낸 세금이 1원이라도 들어가는 건 우리가 그만한 권한을 갖는다는 의미고요. 관리 감독의 권한이 우리에게 주어진 권한이죠!”

내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세금 내는 사람이라는, 공무원 월급 주는 사람이라는 주인 의식이야말로 아줌마의 당당함을 갖춰주는 전제 조건이다. 이를테면 집 앞에 보도블록이 새로 깔렸다고 치자. 이럴 때 당당한 아줌마라면 두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첫째 “why?”, 둘째 “how?”다. why는 의사의 진단과 같은 의미고, how는 의사의 처방전, 즉 치료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의문표을 품고 살다 보면 돈과 사회, 국가권력 앞에 당당한 주인이 될 수 있다.

“공무원들 월급을 대통령이 주나요? 아니에요! 대통령 봉급을 우리가 주는 거죠! 우리는 대통령에 종속된 사람이 아니에요. 이 관점에서 보면 어떤 관력 앞에서 당당해야 하는지 다 보이죠!”

요즘 김 대표는 권력 앞에 당당한 아줌마가 되기 위한 권리 운동으로 ‘생활 민원 서류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집 앞 보도블록이 새로 깔린다면 이전 보도블록은 언제 깔렸는지, 예산은 얼마나 들었는지, 공사 시공업체는 어떻게 지정했는지, 공사 예산은 얼마로 잡혔는지 등을 민원 서류를 통해 구청장에게 되묻는 거다. 이렇게 보내진 서류는 열흘 안에 구청장 직인이 찍혀 답변서로 오게 마련이란다. 끊임없이 내 주변을 돌아보고 되묻는 작업, 그것이야말로 아줌마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길이다.

21세기 아줌마의 자세 3. 생활인으로서 전문성을 갖는다

“우리 아줌마들은 스스로 전문성이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의기소침하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아줌마만큼 생활인으로서 전문가가 어디 있나요?” 맞다. 이 땅의 아줌마라 불리는 수많은 주부들에게 ‘전문성 결여’는 일종의 아킬레스건과 같다. 누구나 하는 살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만 되묻자. 그 살림이라는 것이 누구나 맘만 먹으면 잘하는 것인가?

그는 아줌마야말로 생활 전문가라 칭한다. 그가 말하는 아줌마는 각 가정의 대표이사. 가족을 주식회사라고 떼어놓고 본다면 기센 남편은 회장, 아내는 사장, 자녀들은 이사가 된다. 그렇다면 이 주식회사를 누가 운영하겠는가? 회장? 이사? 아니다. 매달 지출보고서와 수지결산을 가늠하고 내년 가족 경제를 예상하는 것은 사장이다. ‘내무부장관’이라 불리는 아내의 몫이다. 바로 여기서 생활인으로서 아줌마의 전문성이 빛이 난다.

“어느 집안에 돈이 들어왔다고 가정해봐요. 유능한 관리자는 식비와 가스비, 관리비 등을 딱 떼어놓고 필요한 나머지를 챙기죠. 하지만 무능한 관리자는 어때요? 하고 싶은 것부터 해버리죠. 이게 바로 전문성이에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전문성을 둘러싼 아줌마들의 콤플렉스가 곧 자녀 교육으로 이어진다는 그의 지적이다. 결국엔 아이를 법조인, 의료인, IT 전문가로 만들려는 교육에만 매달린다는 얘기다. 아이가 어떤 어른이 될지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지 집중한다는 것.

“그런데 진짜 훌륭한 선생님은 원래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더욱 잘하게 하기보다 공부를 할까 말까 하는 아이들을 이끌어내는 분이 아닐까요? 진짜 좋은 대통령이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이를 위한 정책을 세우는 대통령이듯 말이에요. 그게 유능한 전문가예요!”

21세기 아줌마의 자세 4. 아이는 왕, 나는 시녀? 자녀에게 당당하라

최근 문제가 되는 과잉보호! 그는 현명한 어머니가 되려면 자녀를 둘러싼 과잉보호의 벽부터 허물라고 조언한다. “엄마들의 과잉보호야말로 아이들의 능력을 갉아먹는 일이죠. 애들이 해도 될 것을 굳이 엄마들이 몸종이 되어 해주거든요. 아이를 왕으로 모시고 시녀가 되려는 엄마들이 적지 않아요.”

그는 그 이유로 ‘정’과 ‘교육’의 모호한 구분을 꼽는다. 내가 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 발생적으로 끓어오르는 모성애 같은 것이 ‘정’이라면, 그걸 어떻게 절제 있게 사용하느냐가 ‘교육’이라는 것. 그걸 명확히 구분하면 엄마가 아이들의 능력을 갉아먹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는 지금껏 아이의 가방을 챙겨준 적이 없단다. 물론 맞벌이 엄마로 너무 바쁘다 보니 못 챙겨준 점도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유치원 때부터 독립적으로 자기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한두 번 엄마가 챙겨줄 때는 물건을 놓고 오던 아이가 자기가 챙기면서부터는 자기 물건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오더란다. 종종 내가 공부를 조금 도와줬다면 좀더 좋은 대학을 갔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욕심은 없다. 서울대 나온 아들 부럽지 않을 만큼 다부지게 자랐단다.

자녀 교육을 둘러싸고 남의 집 아이 흉내 내듯 따라 하는 것도 금물이다. 모방 쇼핑이 문제가 되듯 수많은 엄마들이 모방 교육에 빠져 있다는 게 그의 지적.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선 엄마, 즉 아줌마의 가치관 확립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가끔 그는 이제 아빠가 된 아들을 앉혀놓고 웃지 못할 ‘협박’을 한단다. 자식이 불효하면 다른 엄마들이야 남이 알까 숨기겠지만 난 ‘애새끼 잘못 길러서 우리 새끼 불효자식 됐다’고 떠들고 다니겠다고 말이다. 효도를 하나, 안 하나 보면서 가슴앓이 할 필요가 없다고. 자녀에게 당당하고 나쁜 것일수록 양성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1세기 아줌마의 자세 5. 남편의 기를 살려야 가정이 서고, 내가 행복해진

21세기 아줌마가 갖춰야 할 경쟁력의 마지막은 훌륭한 아내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김 대표는 그 첫째로 ‘남편의 기를 살리는 아내’를 꼽는다. 그런데 남편의 기를 살리기에 앞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남편을 이해하는 것이다. 남편의 사회생활, 돈을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인식해야 한다. 직장 생활을 해본 적 없는 전업 주부에게 직장 내 스트레스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 그러니 남편 어깨의 무게를 가늠하기 위해선 아줌마 스스로 사회에 대한 이해를 키워야 하다. 옆집 남편과 비교하는 것도 금물이다. 남편이 돈 조금 못 벌고, 진급이 느린 게 어디 남편의 탓이겠냐는 것이다. 고의와 실수를 구분해야 한다.

그 역시 한때 남편이 무능해 보일 때가 있었단다. 돈이 중요한 줄 알고 살던 때, 점잖고 학자풍인 남편이 생활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본주의 논리대로만 따진다면 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으니 이혼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돈에 대한 마음을 비우니 남편을 보는 눈도 달라졌단다. 무능하고 생활력이 약해 보이던 남편이 훌륭하고 덕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아이로니컬하게도 생각의 반전은 그가 사회를 이해하는 시각이 넓어지면서 가능해졌단다.

그는 요즘 주변의 힘 빠진 50~60대 남자들을 보면 애틋해진다. 돈 버는 힘이 다한 뒤, 아내에게 용돈을 받으며 사는 자존심 상한 남편들의 모습은 왠지 힘 빠진 호랑이가 떠오른다고. 그간 억눌렸던 마음을 풀듯 힘이 다한 남편에게 퍼붓는 아내의 바가지와 잔소리는 남편들에게 상처만 남길 뿐이다. 하지만 진정 화목한 가정을 원한다면 필요한 것은 남편을 보듬는 자세다.

“남편의 기를 살림으로써 가정이 똑바로 서죠. 가정이 화목하면 늘 내가 당당해질 수 있고요. 가끔 밥하기 싫고 설거지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잖아요. 그게 과연 남편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일까요?”

이제 그의 질문에 우리가 답해야 할 차례다. 글쎄… 말로는 항상 남편 때문, 아이들 때문이긴 한데 솔직히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어설프게 남편 탓, 자녀 탓일랑 하지 말자. 스스로 ‘아줌마’임을 인정하듯, 쌓인 빨랫감과 설거지 사이에서도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만큼은 절대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김용숙 대표는…

끊임없이 인생을 계획하고 변신시킨 주인공. 스무 살 되던 해 MBC 공채 탤런트 5기로 입사했고, 3년 뒤에는 (주)대한항공 스튜어디스로 변신했다. 스물여덟 살에는 여성 의류 제조업체인 구룡상사 대표로 나섰으며, 마흔다섯에는 참여연대 문화사업국장을 역임했다. ‘아나기’는 마흔일곱에 만든 생활 문화 단체로 벌써 11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엔 에코 아줌마 인증 교육과 음식물 자원 활동, 에코 아줌마 예술단 등 소비자에서 문화 생산자로 거듭나는 일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취재 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사진 박경섭 장소 협찬 어반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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