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 나라에서 진보와 보수논쟁을 땅에 묻어야 국민들이 조용히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또 뭔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거창하게 나오시나?” 얼마 전 남편과 나누었던 대화다. 우리부부는 가정사가 아닌 문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종종 있다. 언젠가는 대통령선거문제로 논쟁을 하다가 무려 4개월여 대화를 끊고 지낸 일이 있다. 남편의 말수가 워낙 적은 탓에 나라도 말을 많이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시작된 수다는 묻지도 않는 말을 늘어놓기 일쑤다. 십 수 년 전 대통령 선거 때도 이러한 습관 때문에 비밀선거원칙을 깨고 “나는 아무개후보를 찍을 거예요‘라고 선전포고하듯 공개투표를 했다. 내가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을 치자 남편은 ”여자들이 얼굴만보고 대통령을 뽑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라니까! 쯧쯧“ 하면서 혀를 찼다. 순간 자존심이 무너져 내려셔 참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선거를 인기투표쯤으로 생각한다는 여성비하발언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내가 대한민국 여성대표라도 된 듯 열을 올리면서 남편에게 따졌다. “대통령후보들이 상대방 흉보고 헐뜯기 바쁜데 내가 찍은 후보만 흉을 안보기에 찍었어요.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들이 초등학생 코쟁이싸움 하듯 하기에 그렇지 않은 후보를 선택한 것이 뭐 그리 잘못 됐어요?” 어이없다는 듯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했다. 한마디로 내가 선택한 사람은 상대방후보 흉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때 남편에게 당한 망신을 만회하고자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남은 인생을 시민운동 꾼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는 진보와 보수문제를 불쑥 들고 나오니 남편은 내가 또 뭔 소리를 하려는가하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있던 날, 군인장교출신 한분이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 고노무현 전 대통령이야기에서 자연스럽게 진보를 성토하는 이야기가 옮아갔다. 그의 주장 중 국민의 생명보다 안보가 우선한다는 대목에서는 더 이상 듣기가 곤란해 졌다. “죄송한 이야긴데 선생님 같은 분들 때문에 꼴통보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내 사무실을 방문한 손님에게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다. 그와의 대화는 나를 서울광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고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모습을 현장에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시민단체에서 근무할 때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던 지인을 오랜만에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때 마침 한 쪽에서 누군가가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타살의혹 7가지라는 제목의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다. 지인은 그를 가리키면서 “김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의 동조를 구하는 눈치다. “저렇게 하면 돌아가신 분을 오히려 욕보이는 일이지요”라고 나는 답을 했고, 그와는 어색한 작별인사를 하고 이내 헤어졌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양끝으로 달리고 있는 이들을 목격하면서 찢길 대로 찢겨진 우리국민들의 마음을 무엇으로 치유해야 할지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걸어서 세상 속으로”라는 TV프로그램에 오바마 미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편이 방영되었다. 방송에서 시카고의 한 흑인아줌마는 오바마 미대통령’에 바라는 인터뷰를 통해서 오바마대통령이 흑인인 자신들만의 대통령이기보다 모든 국민을 위해서 공평하게 일하는 대통령이 되어주기 바란다고 했다. 대표적인 다인종국가이면서 미국이 세계최강국인 것은 평범한 소시민의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진보는 진보편만 들고 보수는 보수편이여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한국과 다른 모습이 의아해 보이기까지 했다. 진보주의자에게 보수지지발언을 하거나 보수 앞에게 진보를 지지하면 잘 진행되던 사업도 깨지거나 원수지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입 다물고 비굴한 삶을 살아야하는 한국의 현실과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용도 폐기된 이념논쟁 틀에 갇혀서 옴짝달싹도 못하는 한국사회의 현실. 대한민국국민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식인과 지도층, 언론 등이 부추기는 이념논쟁에 발목이 잡혀서 국가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암울한 현실이다. 그들은 왜? 용도 폐기된 이념전쟁으로 국민을 혼동의 늪으로 빠지게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진보보수 이념논쟁이 국민의 실질적인 삶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진보가 진보임을 주장하면서 진보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순간 이미 진보가 아닌 것을 그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며, 한국사회에 진정한 보수는 없고 기득권층이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해묵은 보수와 진보이념논쟁을 땅에 묻지 않는다면 국가 전체는 조각보가 될 것이 뻔한데 왜 낡은 이념논쟁에 연연하는지 궁금하다. 혹여 진보보수의 끈을 놓는 순간 자신들의 밥그릇이 날아갈 것을 염려하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기준 또한 무엇인지 묻고 싶다. 예를 들어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국민은 없을 터인데 대북관계를 가지고 국민의 뜻을 진보보수로 재단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세계 제일의거부 빌게이츠가 무한한 부를 지향하면서 분배에도 적극적이라면 그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고 노무현대통령과 고박정희대통령을 공히 존경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지식인과 사회지도층, 언론에 엄중히 고하고 싶다. 진보와 보수이념논쟁을 멈추고 국민화합을 위해서 힘써달라고. 그러한 노력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유지를 위한 편 가르기 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대 국민 사기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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