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7 17:02
가난을 즐기는 이유 <김용숙>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4,233  


가난을 즐겨야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욕심에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 가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습니다. 먹고 싶다, 보고싶다, 갖고싶다, 예뻐지고 싶다. 싶다, 싶다, 싶다..... 우리 행복의 발목을 잡는 괴물이지요. 그리하다 욕심이 충족되지 아니하면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끝내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평소 마음을 비우고 산다고 습관처럼 이야기 하지만, 그 말 자체가 본심이 아님을 증거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들통 나곤 합니다. 비근한 예로 강남에 사는 아줌마들이 부러울 때가 그렇지요. 강남에 사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을 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내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만날 때면 "어느 사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평소 성격대로라면 묻기 전에 "나 000에 살아요."라고 자수하고 싶지만 묻지도 않는 말을 구구절절 쏟아냈다가 영락없는 푼수아줌마로 낙인 찍힐 것이 염려되어서 그리하지도 못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모면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만 그러한가 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더라구요. 나의 이런 사정을 이야기 하니 "맞아요 나도 그래요!" 하면서 공감어린 맞장구를 치더군요.

1985년으로 기억됩니다. 첫번 째로 사업이 망 할 즈음 남편이 남산JC(한국청년회의소)회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이 망해 가는데 무슨놈의 회장이냐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 모두 웅성웅성 거리더군요. 허나 내 생각을 달랐습니다. 사업도 망했는데 남편이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주변의 반대를 뒤로하고 오히려 내가 앞장을 서서 남편의 회장출마를 부추겼습니다. 그리고 회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참고로 JC회장선거는 국회의원선거 못지 않게 불꽃 뛰기는 전쟁입니다.) 사업이 망해가니 회장선거에 쓸 돈은 전무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남편이 회장에 당선되었을 때 남편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남편이 덕(?)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집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밖에서 회장노릇 하는 모습을 보니 리더십 있는 사람으로 보이더군요. 아직까지 그의 속 마음을 몰라서 헤메고 있습니다.

회장에 당선은 됐으나 돈이 없으니 회장노릇하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32개의 지역JC가 있는데 32명의 회장이 모이는 별도의 회의체가 있습니다. 친목계 계주도 할 만한 사람이 하듯이 32명의 JC회장님 모두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들하고 회합이 있는 날이면 가기 전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합니다. 저는 왜 가느냐구요. JC의 왠만한 행사 거의 부부동반입니다. 해서 JC활동에 관심이 많은 남편들은 부인을 극진하게 모셔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만, 모임 후 헤어질 때가 되면 다른 회장들이 남편에게 "이회장님 차 어디 있어요?"라고 어김없이 묻습니다. 남편이 우물쭈물 대답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으며 잽싸게 나서서 "아, 저쪽에 있습니다."라고 거짓답을 하곤 했답니다. 사실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차를 처분해 차가 없었거든요.

거짓말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편치않고 교활한 내 자신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내 마음이 모래사막처럼 황폐해져감을 느끼게 되더군요.

한 두번도 아니고 안되겠다 싶어서 하루는 작심을 하고 모임에 나갔습니다. 헤어질 무렵 어김없이 같은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 사업이 망해서 차 팔았어요!" 라고 진실을 말했으나 사람들 대부분 내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더군요. 그동안 나의 쇼가 완벽했음을 증명하는 것이지요.

진실을 고백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광명을 본 듯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희열을 맛 보았습니다. 왠 진작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왜 진작 솔직하지 못했을까??

내가 망하고 돈 없다는 사실을 알면 자존심이 상해서 죽을 것 같은 마음에서 전전긍긍하는 사이 건강도 나빠질대로 나빠져서 원래 저혈압인 상태에서 혈압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상태되니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앰블런스에 실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니까요. 이러한 상황까지 몰고간 거짓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니 건강도 좋아지고 호랑이 빼고 두려울 것 없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실이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간단한 진리를 모르고 살았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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