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9 16:24
결혼 대 사기극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3,994  

지금 이 시간에도 속았다는 배신감에 철철 눈물을 있을 여자들이 많을 것이다.

남편들은 결혼 전에 이렇게 속상였을 것이다.

"절대로 너는 고생 안 시킬게. 영원히 지켜줄께"

든든한 보호자를 자처했던 남편이 이제 뻔뻔한 행동을 밥먹듯이 해대고,

소리를 지르고 명령을 내리고

고생을 바가지로 시키면서도 미안한 기색이 하나도 없다.

나 역시 그랬다. 나도 내 남편이 천하에 그런 사기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혼 후 사기를 당한 분함으로 3개월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눈물을 쏟았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있으면,

거울 속의 나는 어느 새 눈이 새빨개져서 줄줄줄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었다.

새 색시가 이렇게 힘드는데, 남편은 따뜻한 위로는 커녕 뜨아하게 쳐다만 본다.

그 분함에 이혼을 떠 올린 것도 한 두번이 아니다.

정말로 할 수만 있다면 결혼을 무효로 하고 싶었다.

내 인생을 돌려달라고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참고 극복하며 살아온 것이 30년이 되었다.

지금와서 주위를 살펴보니, 나는 나만 속아서 결혼한 줄 알았는데

세상 여자들이 다 속았다고

말한다.그러고 보니, 내가 멍청하게 속아서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

결혼 자체가 영악한
속임수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사기극이다.

여자들이 결혼을 팔자 고치는 일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시기극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대한민국의 역사는 남편한테 속고 또 속아서,

배아파라 아이 낳고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하며

지리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들의 피눈물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처음부터 사기극인줄 알고 결혼했다면 이렇게 긴 세월을 억울해 하며 살지 않았을텐데!

평생 내 팔자가 필 거라고 생각했던 사건이 세 가지인데,

하나는 탤런트가 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튜어디스가 된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결혼을 한 것이었다.

나는 탤런트만 되면 날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대중들의 인기를 온몸에 받으며 TV에 대문짝만하게
얼굴을 내미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은 채 반년도 못 되어서 와르르 무너졌다.

오히려 내 자신이 연기도 못 하면서 머리는 텅 빈 계집아이라는 주제파악만 했을 뿐이다.

스튜어디스가 되면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꽤 잘나가는 상류층 사람들만 상대 할테니

나도
덩달아 상류층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기를 쓰고 노력해서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그러나 4년동안 스튜어디스 생활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도 잘 난 것 하나 없고

오히려 걸멋과 허풍만 잔뜩 들어간 빈 껍데기라는 사실이었다.

어린 내 눈에도 돈 좀 벌고 권력 좀 있다고

어깨에 힘 주는 아저씨들이 얼마나 웃겨 보였는지!

아마도,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기회인

결혼에 엄청난 기대를 걸었나 보다.

결혼 전, "나 같은 공주는 결혼해서 당연히 파티만 하면서 살 거야!" 하는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그래서 비행을 하는 동안 파티용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파리로 첫 비행을 갔을 때 일이다.

가방을 호텔 방에 던지자마자 샹젤리제 거리로 달려 나갔다.

3년 째 연속 상연되고 있는 영화<임마누엘 부인>한편을 간단히 해치우고

샹젤리제 거리를
잡듯이누비기 사직했다.

얼마나 헤메었을까, 진열장의 옷 한 벌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등이 깊에 파인 검정색 비로드 드레스,

그리고 종이처럼 얇은 가죽으로 만든 팔꿈치까지 올라가는 흰색

롱 장갑, 저 드래스에 저 장감을 긴다면

영화 속 주인공은 바로 나 일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는 일초의 망서림도 없이 파리 출장비로 받은 200여불을 몽땅 털어서 그 장갑을 샀다.

그 때 야심찬 계획으로 샀던 그 롱 장갑은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되지 못 한채 비닐에 곱게 싸여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옷장 맨 밑바닥에 간직되어 있다.

아들 결혼식 때 며느리가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다행일 듯 하다.

그러나 2007년 아들 결혼식에도 사용하지 못했다.

며느리가 너무
과한 것 같은 눈치를 보이기에 계획을 접고 말았다.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고 사랑에 빠지지도,

결혼을 하지도 않으면서 혼자 곱게 늙으면 사기를 당할
일도 없고,
 
울함에 분통이 터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이라는 사기극의 각본을

쓰고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중국속담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결혼을 하는 것은 경험의 부족이고,

이혼을 하는 것은 이해의 부족이고, 재혼을 하는 것은

기억력의 보족이라고 한단다. 동감 할 수 밖에 없는 말이다.

나는 평소 결혼식에 참여하는 일이 다소 부담스럽게 생각된다.

행복의 출발점에 서 있는 그들을
마음 놓고 축하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결혼식에 참여하면 '안됐다. 큰 일났다.'는
생각이 앞 선다.

저토록 행복에 빠져 있는 새 부부들의 행복이 과연 얼마동안 유지될까.

결혼을 왜 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결혼인지,

이에 대한 계획이나 각오도 없이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남들이 다 하는 일이니까

나도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밀려서 준비없이

결혼을 한 것이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목표가 분명치 않았으니 가야 할 길은 당연히 가시밭길이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행복해서 미치겠다는'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볼 때,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때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씨익 웃으면서 " ㅎㅎ ,

넌 지금 사기를 당하는 거야 넌 바보같이

속을 것이고 땅을 치면 울게 될 거야"라고 말해 주었더라면!


<용숙의 두 번째 책 "결혼大사기극" 제1장 결혼! 중에서>



[출처]
결혼 대 사기극|작성자 김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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