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9 16:17
감성 100%자극의 음모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4,028  

젊은 날을 돌이켜보면 현기증 나도록 아찔아찔했던 순간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허구헌 날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내 얼굴에 빠져 있었다.

누가 예쁘다는 소리만
해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시절이었다.

토요일일에 일찌감치 학교를 파하고 단작친구와-이친구도 얼굴이 꽤 예뻤다- 함께 무장적 버스를

탔다.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서 "너희들 참 예쁘구나. 이름이 뭐니?" 하신다.

우리는 수줍음에
쭈삣거리면서도 "이름은알아서 뭐하시게요?

아저씨 이름은 뭔데요?" 하면서 말장난을 시작했고

결국에 버스에서 내려 자장면까지 얻어 먹었다.

아저씨가 뚝섬에서 배를 태월줄테니 다음 주
주말에 또 만나자고 하셨다.

우리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좋다고도 싫다고도 얘기하지 않은 채,

토요일 한시에 뚝섬 배 타는데서 만나자고, 렇게 약속을 했다.

그리고는 다음 주 한 주를 토요일 다가오는 것만 걱정하며 보냈다.

배를 타보고 싶은데 아저씨를
만난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저씨가 친구를 한 사람 데리고 나오겠다고 했는데 이게 웬
쌍쌍데이트 분위기인지,

호기심
때문에 가고는 싶은데 어쩐지 옳은 일이 아닌 것 같고, 안 가자니

궁금하고 이런 기회가 아깝기도 하고...

친구와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토요일이 왔고, 우리는
깨끗이 가지 않기로 했다.

마음으로는 정말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머리는 가지 않는 것이 백번 천번

옳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깝기도 했지만 두고두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오십이 넘어서 생각 해 볼 때 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 사건 외에도 여러 번 가슴과 머리 사이에서 갈등해야 할 때가 있었다.

나는 그 때마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고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정말 잘 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사람의 삶이 얼마나 아슬아슬한가. 한 발짝만 잘못 내디뎌도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막연한
호기심에 혹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을 많이 보았다.

다행이도 나는 감성보다 이성에 강한 사람이었다.

배우자를 선택 할 때에도, 결혼생활을
꾸려가면서도,

나는 감성보다 이성에 의존하여 결정을 내렸다.

지금 남편을 택한 것도, 딴 남자들은 꽃다발과 선물을 안기면서 내 감성에 호소하려고 했지만,

이 남자는 애정공세를 벌이는 데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박학다식해 보이는 외모아 논리정연한 
말솜씨가 나의 콤플렉스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 남자와 살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학생이 되는 기분으로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면
믿으시려나?

그러나 나 같은 여자는 극히 드물고 ,

사실 요즈음 여자들이 찾는 남편감은 100% 감성을 채워주는

남자인 같다. 하루 열 두번 문자메시지를 보내주고,

사랑한다 말해주고, 백일 기념일에

발렌타인데이에, 생일선물, 백송이 장미꽃 프로포즈,

한 마디로 공주대접을 철저히 해 주는 남자를 찾고 있다.

여자들이 이런 남자를 최고로 치니, 남자들도 덩달아 감각적 기교를 늘리는데 치중하고 있다.

향수나 목걸이를 선물하고 전화로 노래 불러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넘어오는 여자들이 없다는

선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요즈음 젊은이들의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테크닉위주인지
알고도 남는다.

경고하건데, 여자들의 감선을 100% 채워주는 남자는 작업에 도통한 플레이보이뿐이다.

그런데고
불구하고 그런 남자만 자꾸 눈에 들어오니,

상처만 쌓이고, 결혼은 자꾸 멀어져 간다.

저 남자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냐를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마음은 얼마나 소모적인가. 남자가

여자에게 잘 해 줄 때는 잘 보이고 싶을 때다. 잘 보여서 몸이든 마음이든 갖고 싶어서 마음이

달아 있을 때다. 그래서 자꾸만 전화를 걸고 만나자고 난리를 피우는 게다.

그런데 그 결과는? 남자는 갖고 싶은 걸 가졌으니 더 이상 잘 보일 필요가 없고,

이제는 막
나가기 시작한다.

감성을 100% 채워주는 남자도 좋고 사랑을 확인하려는 것도 좋지만,

결혼은 그게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은 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나와 가치관이 맞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꼼꼰이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걸 정확하게 잘 보려면

감성의 눈이 아닌 이성으 눈으로 그를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지식인은 21세기를 감성의 시대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은 억지로 감성을 통제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울고 웃고 즐기면서 살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머리가 좋은 것보다 감성이
발달된 사람이 21세기적 인간형이라는 말도 있다.

한마디로 마음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감성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세련된 삶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온 나라가 EQ(감성지수)를 높이는 일에 열중하는 지금의 분위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엣날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들었는데,

요즘 부모들은 무조건 안고 어른다.

뽀보하고
포옹하는 것이 아이를 감성이 강한 아이로 만든다며
 
자꾸만 접촉을 강조한다. 심지어 문화센터 같은

곳에서는 EQ를 높여주는 모차르트 음악 강의가 유행이다.

이렇게 감성이 강한 아이로 키우면, 정작 이성이 필요한 시점에 아이들이 질퍽거리게 된다.

숙제는 내 팽개치고 컴퓨터 오락에만 빠져있다거나,

시험이 내일인데도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가겠다고 난리를 피운다.

이런 아이가 자라서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이성은 인간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리게 한다.

이성은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이며,

참기 어려운 일을
참게 하는 힘이다.

이성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게 하는 단호함이자 정직함의 힘이기도
하다.

이성이
마비되면 사람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

엉망이 된 인간관계의 내면을 들여다 보면 모든 것이 감성이 저지른 음모임이 분명해진다. 이혼이

감정적이지 않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기에는 엄청난 오해와 빗나간 
언어와 상대방의 모조건적인 미움이 있지 않았을까?

조그만 더 이성적으로 생각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성의 힘이 제대로 발휘할 때, 인간관계의 함정은 한결 줄어 들 거이다.


<김용숙의 두 번째 책 "결혼大사기극" 1장 결혼! 중에서>


팅거벨 12-05-0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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