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9 16:10
결혼은 왜 하는거지??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3,958  

버스나 공원에서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노부부의 모습을 본적이 있는지?

언제부터인지 나는 흰머리의 늙은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쯤 뒤돌아보곤
한다.

왠지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얼굴에 겹겹이 쌓인 주름이라든지, 느리고 힘 빠진 걸음걸이라든지, 서로 별로 말은 없지만 쳐다만봐도

안다는 듯한 도통한 표정이라든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냥 초월한 모습...

나도 과연 그러한 풍경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결혼이라는 것이 하는 것도 어렵지만 지켜나가는 것이 더 어려워서, 벌써 30년 넘게 무사히

살았는데도 아직도 앞날이 두렵다.

저 남자가 날 더 힘들게 하면 어쩌지? 칠순이 넘어서

이혼을 청구하는 할머니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그리랬겠는가?

그런데 내 마음속으로는 정말로, 진정으로, 이 결혼을 잘 지켜나가서, 나 역시 저 늙은 부부처럼

짠한 풍경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디.

벤취에 나란히 앉아서 가끔씩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햇볕속에서 졸아보고 싶다.

역시 세상만사는 무엇이든지 마지막이 중요하다.

태어나서 철이들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자식

낳는 것은 누구나 비슷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어떻게 죽느냐다.

후회 없이 외롭지 않게 죽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어는 드라마의 대사처럼 자식과 손자 손녀의 배웅을 받으면서 깨끗한

이불에 누워서 웃으면서 죽고 싶다.

지금 한국에는 결혼을 안해도 그만이라른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은 결혼이 자유를 구속하고 의무와 책임만 지우는 짜증나는 제도라고 말한다.

차라리 동거를
하거나 자유연애를 하면서 쿨하게 살겠노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그런데 내 것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면서, 상처도 받지 않으면서, 남으로 인해 내 인생을

희생하지도 않으면서, 내 한 몸 잘 돌보면서 재미있게 살겠다는 이들의 생각을

나도 한 때는
품어 본 적이 있다. 왜 없겠는가.

아마도 그렇게 살았으면 참 편했을 것이다. 내 인생이 힘들어진 것은 결혼 후부터 인것이

확실하다. 정말로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만사가 편했으리라.

그러나 이렇게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서 결혼을 한 것이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세월을 두고 후회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래도 그건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룬 일이다.

결혼 한 덕분에 저 잘난 줄만 알고 기고만장했던 내가 남을 위해 울줄도 알게 되고,

반성도
할 줄 알게 되었다. 더구나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교수같은 남편과 도덕선생같은 아들과

살다보니 세상공부도 새로 했다.

확실히 나는 결혼 한 후에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늙어가면서 계속 이 사람들은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

늙어서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내가 아프고 힘 들때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 아내라서 엄마라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좋아서 - 나를 도와주었으면 한다.

그러려면 내가 내 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 두 사람 보기에 창피하지 않게, 나 스스로도

당당하게, 옳은 생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한다.

나는 한 아줌마단체의 리더로서 신문잡지에 얼굴도 내미는 일종의 공인이지만,

나에겐
대중보다도 신문의 독자나 시청자들보다도 남편과 아들이 더 무섭다.

그 무서움이 나를 바로
서게 하는 힘이다.

결혼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은 비겁하다.

그들은 입으로는 결혼보다 자유와 자아실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진짜 자신의 본질과 마주치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다.

평소에 도인이던 사람도 다 빼앗기고 빈털털이가 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다.

자기 것의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해야 할 때 과연 나는 지금의 밝고 아름답고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아주 추해지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미워서 미음속으로 수없이 죽이고 저주하게 될 지도 모른다.

잔머리를 굴리면서 간사하게
나 혼자만 빠져나갈 구멍을 궁리하게 될지 모른다.

정말로 나도 그 가까이 갔었다. 그런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지우고 또 지웠다.

그렇게 지우고 지우다가 나를 한 번쯤 죽인 후에야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그런데도 아직도 죽여야 할 내가 너무나 많으니 이를 어쩌랴!

늙어서 함께 산책을 하는 부부는 아마도 골백번도 넘게 자신을 죽였으리라. 도인이 따로 없다.

얼마나 위대한가!

결혼을 부정하는 것은 이 위대한 자기와의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얄팍하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건 그만큼 이 사회가 비겁자와 이기주의로

뒤덮인다는 뜻이니, 나는 이 나라의 미래가 심히 염려스럽다.

또한 그것은 늙어서 홀로 외로이 누구의 배웅도 없이 받지 못 한채 울면서 죽어가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결혼하길 잘 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 내린다.


<용숙의 두 번째 책 "결혼 大 사기극" 1장 결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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