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9 15:59
너 설거지 한번 나 설거지 한번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4,017  

한 여성댠체에서는 매년 평등부부를 선정하여 시상을 하고 있다.

선정된 부부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면 대부분이 비슷하다.

우선 남편도 집안 일을 하고 있고, 두 사람이 가사와 육아를 공동

분담한다는 점, 자녀를 양육할 때 딸과 아들을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 그 밖에 재산이

공동명의라든가 하는 조항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매년마다 이런 기사가 반복적으로 나오니까 슬슬 반감도 생겼다.

꼭 여자가 일을 해야 부부가 평등한 것일까?

가사와 육아를 그렇게 떡 자르듯 반쪽으로 나눠야만

평등한 걸까? 시댁과 친정에 번갈아 간다고?

결혼하면 당연히 시댁제사에 참가하는 게
며느리의 권리 아니던가?

평등이란 말이 마치 50대50으로 똑 같이 나누는 '공평분배'의 뜻으로 오해될 소지가 크다.

정말로 요즘 주부들을 보면 일도 여유도 유흥도 남편과 똑같이 나누겠다고

덤벼드는 사람이 많다.

똑같은 맞벌이니까. 내가 설거지 한 번 하면 남편도 설거지를 한 번 하고, 남편이 술 먹고

새벽 3시에 들어오면, 나도 3시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시댁에 한 번 가면 친정에도 한 번 가야 한다. 시어머니께 30만원 짜리 선물을 사 드렸으면

친정 어머니에게도 딱 30만원으로 선물을 해 드려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러한 평등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평등 해 질 수 없다.

왜냐하면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아이들 걱정에 먼저 집에 들어가는 건 여자일 수밖에 없고,

들어오는
돈은 뻔한데 시어머니 선물 하나 사들이면

찬정 어머니 선물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계속 남편한테 밑지고 남편위주로 불평등하게 사는 것 같아 속이 뒤집힌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양과 질의 절대균형이 평등한 것일까? 양과 질이 정말 문제라면,

그렇다면 남편이 바람 한 번 피우면 나도 바람을 피워야 우리부부가 평등해 진다는 건가?

더구나 맞벌이가 아닌 대부분의 전업주부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절대균형을 이루라고 한단 말인가?

나도 어릴 적에 남동생과 사과 하나를 나눠 먹으면서

동생은 다섯쪽을 먹고 나는 세족을 먹는

것이 불평등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우릴 시장에 데려가도 남동생 바지만

하나 사고 내 바지는 울며 보채야 하나 사주실 정도였다.

나는 그게 할머니의 남녀차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아무리 그렇게 차별대우를 해도 내 권력이 남동생보다 약한 적은 없었다.

나는 가족 안에서 발언권이 있었고 내 의사는 존중되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내 철부지
짓에 혀를 끌끌 차긴 하셨지만,

내 할 일만 다 하면 하고 싶은 짓을 못하게 하진 않으셨다.

지금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설거지나 요리, 청소는 내가 훨씬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평등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는 친정에 자주 못 가고 명절이나 제사 때 시댁에

빠짐없이 참가하지만, 그것을 오히려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지 의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또 친정에 가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

내 생활이 남편위주로 시댁위주로 맞춰져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나는 일이 있을 때 밖에
나가고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온다.

그 시간이 새벽 2시라도 상관 없다. 남편에게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서둘러 후다닥 집에 들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갑자기 시댁에서 호출을
해도 이미 선약이 있으면 그렇다고 말하고 내 볼일 보기에 바쁘다.
 
한 마디로 집안 일이든

바깥 일이든 내가 알아서 내 할 일 다 하면 산다.

평등하다는 건 존중받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재산의 소유권이나

노동분배의 공평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중대사를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며

남편도 아내도 서로의 필요와 욕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공평한 분담을 쟁취해내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여 상대방의 존중을 얻는 더것이 정답이 아닐까 한다.

남이 나를 존중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건 게으름을 피지 않고 내 할 일을 성실하게 다
하는 거다.

그러면 큰소리를 칠 수 있는 당당함이 생기고 내 몴을 책기는데 거리낌이 없게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집안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빠쁘게 밖으로 나돌아 다녀도 기본적으로
집안 일은 꼭 해 놓는다.

매 끼니 남편과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겠다거나 매일 남편의

와이셔츠를 빳빳하게 다려놓겠다는 식의 유난은 떨지 않는다.

다만 밥통에 늘 밥이 있고,
냉장고에 늘 반찬이 있어서

배고픈 사람이 스스로 쉽게 차려 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빨래도 마찬가지다. 나는 빨래바구니가 그득해지면 빨래를 돌린다.

그득하지도
않은데 꼭 빨아야 할 옷이 있다면 급한 사람이 돌린다.

급한 사람이 돌리고 건조대에 털어서
건다.

급하게 빨아야 할 옷을 미처 빨래바구니에 내놓지 않았다면 그건 그 사람의 잘못이다.

설거지도 청소도, 나는 내가 할 수 있을 때 내가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내가 바빠서 못 할
때는 남편과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당분간 두 사람이 알아서 해 달라고 양해를 구한다.

처음에 두 남자는 집안의 그릇이란 그릇은 죄다 꺼내놓기만 하고 씻을 줄은 몰랐다.

그러나 내가
꿈쩍도 하지 않자 결국엔 스스로 씻기 시작했다.

어쨋든 물은 마셔야 하고 밥은 먹어야 하니까.

덕분에 나는 힐 일은 하는 여자라고 인정을 받았고, 그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남편과

아들의 지지를 받으면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대학원에 가서 NGO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기도 하고,

강의와 방송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하고 싶기도 하다.

아줌마 운동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도 머리 속에 늘 서너개씩 펼쳐놓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는
집안 일을 할 수 있을 때보다 할 수 없을 때가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남편이 집안 일을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다.

혹시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챙기는

완전 독립형부부가 될 수도 있다.

어찌되든 간에 그런 일로 우리 부부가 불평둥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존중하려고 노력 할 테니까.

<2004년 '결혼大사기극' 제2장 -부부 영원한 평행선-중에서 >

[출처]
너 설겆이 한번 나 설겆이 한번|작성자 김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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