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1-05-17 17:07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의 탄생 <김용슥>
 글쓴이 : 아나기
조회 : 4,123  

아줌마운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아무리 생각해도 팔자소관이외에 달리 설명한 방법이 없습니다. 1999년 7월경 책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김영사 간)"을 출간 한 이후,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 졌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일이었습니다.

책과 관련해서 두어달 이상을 하루 3~4건씩 인터뷰를 해댔습니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 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는지 아직까지도 잘 이해가 안됩니다만, 짐작컨데 책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아줌마라는 단어의 사회적 이미지가 워낙 부정적이서서 아줌마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들고 나서니 기자들이나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국내 최고의 일간지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님 내 기사는 좀 쉽게 써주세요." 했더니 기자가 이상하다는 듯이 "왜요?" 하기에 "기사가 어려우니까 아줌마들이 신문을 잘 안보잖아요!" 하고 일어서려는데 기자가 나를 붙잡아 세우는 겁니다. "아줌마 이담에 뭐 하고 싶은 거 있으세요?" "아뇨, 하기는 뭘 해요 아줌마가 책을 낸 것만 해도 감개무량한데!" 그 때 내 심정은 내가 책을 낸 것이 신기하고 기특해서 "나도 책을 냈어요" 하고 하늘을 향해서 소리를 치고 싶을 정도로 감동의 물결이었답니다. 기자는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듯 요리조리 심문하듯 질문을 해댔습니다. 그 자리를 모면하자면 그 기자가 납득되는 이야기를 하나 해야 그 자리를 모면 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아줌마반란부대 만들어서 두목이나 할까요?" "아줌마반란부대요? 두목이요?" 두 단어를 열심히 기자수첩에 적더군요. 그리고서야 나를 놓아 주었습니다.

며칠 후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줌마반란부대 언제 만드실건가요?"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그냥 해본 소린데 그걸 믿으셨어요?" 이렇게 해서 그 이야기는 마무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다시 전화를 해서 똑같은 질문을 하더군요. "여보세요 내가 장난하는 줄 아세요? 그날 기자님이 하도 끈질기게 질문을 해서 생각나는 대로 아무소리나 기껄인겁니다." 그때서야 기자가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 하더군요. 실은 책이 나오자 마자 내 책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각 언론에서 내 인터뷰기사가 여기저기 많이 실리니까 나를 다시 한번 인터뷰하기로 했던 것이지요. 해서 이번에는 주제가 확실한 내용으로 차별화된 기사를 쓰고자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의 의욕에 설득 당해서 "가만히 계셔보세요. 출판기념회를 1999년 9월 2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일주일만 연기하고 생각 해 볼께요" 했더니 이틀 후 <1999년 9월 9일 아줌마반란부대 결성>이라는 제목의 신문기사가 나간겁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재판과정에서 정부기관과 투쟁한 내용이었습니다. 기사를 본 아줌마들이 벌떼같이 전화를 해 왔습니다. 처음에도 전화가 걸려오는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 때 그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그럴 계획이 없다고 물리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진위야 어떠하든 나와 관련된 기사이고 신문사의 신뢰성 등을 생각하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더군요. 해서 걸려오는 전화내용을 귀 담아 들어보니 "나도 억울한 일을 당했어요." "용기가 대단해요. 나도 좀 도와주세요" 등등 안타까운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날을 정해서 한자리에 모이게 됐습니다. 첫 번째 만남에 4,50명이 모였습니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서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만남이 거듭되면서 단체명칭을 바꾸었으면 하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가족들에게 '아줌마 반란부대'라는 모임에 나간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시쳇말로 가족들에게 쪽이 팔린다는 겁니다. 한마디로 단체이름이 품위가 없다는 것이지요. 원하는 단체이름을 물으니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으로 하자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허나 망설여지더군요.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혹여 김용숙이 책 팔아먹으려고 단체이름을 책이름으로 정했다는.....얼마간 버텼습니다만, 회원들의 요구의 워낙 강력해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리해서 1999년 11월 18일 단체이름을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으로 개칭해서 창립총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내가 원하든 그렇지 아니하든 가야 하는 길이 이미 정해져 있음에도 자신들은 잘 모르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뒤 늦게 내 뜻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 아님에도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정열을 바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일을 조금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많습니다. 갈 길은 먼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서 더욱 그러하네요.


 
   
 

twitter facebook 다음카페 네이버블로그